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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은 왜 하필 11월 3일에 라면을 냈을까

2025년 11월 3일, 삼양식품은 우지로 튀긴 라면을 내놨다. 그날은 1989년 11월 3일로부터 정확히 36년째 되는 날이었다.

먹보고 에디터· 11분 읽기· 2026년 8월 31일
1963년에 시작한 라면이 1989년에 끊겼다가 2025년에 다시 이어졌다 — 이미지: 먹보고 (AI 생성)
1963년에 시작한 라면이 1989년에 끊겼다가 2025년에 다시 이어졌다 — 이미지: 먹보고 (AI 생성)

신제품 출시일은 보통 월초나 월중, 물류가 편한 날로 잡는다. 그런데 삼양식품은 2025년 11월 3일을 골랐다. 그 라면은 우지로 면을 튀긴 제품이었다. 우연이 아니다. 이 회사에 11월 3일과 우지는 한 세트다.

1963년, 100g에 10원

시작은 라면이 아니라 식량이었다. 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이 한국 최초의 라면을 내놓는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 쌀이 모자라던 시절에 쌀을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자는 데서 출발했다. 100g에 10원. 닭고기 스프에 주황색 봉지였다. 지금 우리가 아는 빨간 국물이 아니라 담백한 닭 육수였다는 게 재미있다.

창업의 문장도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김정수 부회장은 2025년 출시 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삼양의 시작은 '먹는 것이 족하면 천하가 평화롭다'는 뜻의 '식족평천(食足平天)'에서 출발했다.」 라면은 그 문장의 도구였다.

1963년 출시 당시의 삼양라면 봉지 — 자료: 삼양1963 브랜드 사이트 · 삼양식품
1963년 출시 당시의 삼양라면 봉지 — 자료: 삼양1963 브랜드 사이트 · 삼양식품
1960년대 광고. 「우리나라 최초 라면」 — 자료: 삼양1963 브랜드 사이트 · 삼양식품
1960년대 광고. 「우리나라 최초 라면」 — 자료: 삼양1963 브랜드 사이트 · 삼양식품

제품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1969년에는 라면 시장 점유율이 83.3%까지 올라간다. 한국에서 라면이라는 말이 곧 이 회사의 제품을 뜻하던 시기였다.

1989년 11월 3일, 투서 한 장

그리고 26년 뒤, 검찰에 익명의 투서가 들어온다. 라면과 마가린을 공업용 쇠기름으로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비누나 윤활유 원료로 사용하는 공업용 수입 소기름을 사용해 라면 등을 만들어 시판했다」고 발표하며 삼양식품을 포함한 5개사 관계자 10명을 구속 입건했다. 그날 저녁 뉴스가 그 발표를 그대로 전했다.

그 뒤는 빨랐다. 제품은 전량 회수됐고 생산이 멈췄다. 도봉동 공장은 석 달 넘게 문을 닫았다. 직원 1,000여 명이 회사를 떠났고 1998년에는 화의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시장 점유율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는 보도마다 30%대에서 80%대까지 엇갈리는데, 어느 수치를 잡아도 회사가 무너졌다는 사실은 같다.

김동찬 대표는 훗날 이 사건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우지 사건은 익명의 투서 한 장에서 시작된 무책임한 사건이었다.」

8년이 걸렸다

이 사건에는 결말이 있다. 조사와 재판을 거쳐 문제가 된 기름이 식용 우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1995년 7월 서울고등법원이 무죄를 선고했고 1997년 8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투서에서 확정 판결까지 8년이다.

과학적으로도 그렇다. 우지의 포화지방산 비율은 43%로, 라면 업계가 그 뒤 널리 쓰게 된 팜유의 50%보다 오히려 낮다. 건강을 이유로 쫓겨난 기름이 대체품보다 포화지방이 적었던 셈이다.

무죄는 받았지만 잃은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장의 판도는 이미 바뀐 뒤였고 우지라는 단어는 그 뒤로 30년 넘게 이 회사가 피해야 할 말로 남았다.

2025년 11월 3일, 그 단어로 돌아왔다

그래서 「삼양라면 1963」의 출시일이 눈에 걸린다. 1989년 11월 3일에서 정확히 36년. 회사는 피해야 할 단어를 제품의 핵심으로 삼아 그날 돌아왔다.

발표회는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김정수 부회장은 그날을 이렇게 불렀다. 「그날은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여론 속에서 '공업용 우지'라는 단어가 회사를 무너뜨린 날이었다.」 이어 덧붙였다. 「명예회장님께서 '절치부심, 이를 갈며 다시 일어서라'고 하셨던 말씀을 붙잡고 우리는 다시 불을 지폈다.」

그는 이 제품을 복고로 부르지 않았다. 「삼양 1963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초석입니다.」 발표회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삼양 1963은 삼양이 세상에 드리는 한 그릇의 약속이며, 미래 100년을 향한 새로운 항해의 시작.」

삼양라면 1963 패키지 — 사진: 삼양식품 제공 · 지디넷코리아 보도(2025-11-03, zdnet.co.kr) · 변경 없음
삼양라면 1963 패키지 — 사진: 삼양식품 제공 · 지디넷코리아 보도(2025-11-03, zdnet.co.kr) · 변경 없음

우지 100%가 아닌 이유

개발에는 3년 남짓이 걸렸다. 수십 톤의 우지를 시험하고 수백 개의 샘플을 만들었으며 국물의 기준을 잡으려고 전국의 사골 맛집을 돌았다고 회사는 밝혔다. 결과물의 이름은 「골든블렌드 오일」이다.

여기서 소비자가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 나온다. 왜 우지 100%가 아닌가. 이병훈 연구소장의 답은 기술적이다. 「우지를 단독으로 쓰면 풍미가 너무 강해 육수와 조화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우지 특유의 깊은 맛은 살리면서도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균형 잡힌 풍미를 구현했다」고 했다.

배합은 과거보다 우지 쪽으로 기울었다. 회사 설명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우지와 팜유를 4대 6으로 섞었는데, 이번에는 우지 비중을 대폭 늘렸다. 국물도 바꿨다. 삼양식품 국물라면 가운데 처음으로 우골로 낸 별첨 액상스프가 들어갔고 후첨 플레이크는 동결건조 방식을 썼다.

라벨을 열어봤다

홍보 문구는 홍보 문구고 우리는 봉지 뒤를 본다. 원재료 표기 첫 줄에 이렇게 적혀 있다 — 「면 : 소맥분(호주산, 미국산), 골든블렌드오일{정제우지(호주산), 팜유(말레이시아산)}, 감자전분…」. 정제우지가 팜유보다 앞에 온다. 원재료는 함량 순으로 표기한다. 이 블렌드에서는 우지가 더 많다.

그래서 본품과 나란히 세워봤다. 100g 기준으로 삼양라면 1963은 530kcal에 지방 19.0g, 삼양라면은 429kcal에 13.3g이다. 기름으로 튀긴 만큼 열량과 지방이 는다.

그런데 포화지방은 7.0g과 6.7g으로 거의 같다. 우리 도감의 면류 434종에서 포화지방을 세워보면 1963은 상위권 근처에도 없다 — 1위는 11.0g이다. 36년 전 사람들이 걱정했던 그 지점이, 라벨에서는 별일이 아니다. 앞서 본 43%와 50%라는 숫자가 봉지 뒤에서도 그대로 확인되는 셈이다.

비교 기준이 된 삼양라면 본품 — 먹보고 도감(mb-c00122)
비교 기준이 된 삼양라면 본품 — 먹보고 도감(mb-c00122)

소비자는 어떻게 답했나

반응은 출시 전부터 있었다. 라면 리뷰 채널들은 우지라면이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출시일이 언제냐」는 질문을 계속 받았다고 말한다. 36년 전 사건을 겪지 않은 세대의 리뷰어들도 영상을 우지파동 설명으로 시작한다. 사건이 소비의 맥락으로 살아 있다는 뜻이다.

숫자는 더 분명했다. 재출시 한 달 만에 700만 개가 팔렸다. 기존 삼양라면 오리지널의 그해 월평균 판매량을 80% 넘어서는 양이다. 프리미엄 가격대의 신제품이 원조 제품의 판매량에 따라붙는 일은 흔치 않다.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관련 콘텐츠는 8천만 뷰에 육박했고 그중 약 70%는 크리에이터가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12월 초 성수동에 연 팝업스토어는 사전예약이 5분 만에 마감됐고 이레 동안 1만 명이 다녀갔다.

맛 평가는 갈렸다. 리뷰에서 반복되는 말은 고소함과 묵직함이다. 국물 농도가 진해졌고 끝에 올라오는 고소한 맛이 다르다는 쪽이 많았다. 반대편에는 느끼하다는 반응, 매일 먹는 라면이라기보다 가끔 진하게 먹을 것이라는 평가, 면이 예전만큼 꼬불거리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어른들이 옛날 생각하며 사 드실 것 같다」는 말도 자주 나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지 100%를 기대했다가 블렌드라는 사실에 아쉬워했다. 연구소장의 설명이 필요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36년 뒤의 결산

2026년 8월, 그 봉지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패키징 부문을 받았다. 피해야 할 단어를 앞세운 디자인이 국제 시상대에 올랐다.

우지는 이제 단발이 아니다. 삼양식품은 우지로 만든 짜장라면 「짜르르」를 이어서 내놨고 추석에는 둘을 묶은 한정 선물세트를 냈다. 먹보고 검색 기록에도 이 이름이 남는다 — 최근 6주 동안 19번 검색됐다.

60년 전 쌀이 모자라 만든 라면이, 8년의 재판과 30여 년의 침묵을 지나, 그 침묵의 이유였던 재료를 앞세워 돌아왔다. 한국 라면사에서 이보다 문장이 긴 제품은 많지 않다.

삼양라면 1963이 글의 제품삼양식품 삼양라면 1963제품 정보 →

출처 — 출시 발표회 발언·개발 과정·배합 설명: 삼양식품 발표회 및 보도자료(2025-11-03, 2025-11-20), 아시아경제·문화일보·지디넷코리아 보도. 판매 실적과 팝업 기록: 지디넷코리아(2025-12-08). 우지파동 경과·1995년 항소심·1997년 대법원 무죄 확정·포화지방산 비교: 법률신문, 경향신문, 미디어오늘, 국가기록원. 1963년 출시 정보와 1969년 점유율: 삼양1963 브랜드 사이트 및 언론 보도. 레드닷 수상: 삼양식품 보도자료(2026-08-25). 영양성분·원재료 표기·면류 434종 대조: 먹보고 도감 실측(2026-08-29). 소비자 반응은 공개 리뷰 콘텐츠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경향을 정리한 것으로, 개별 발언을 인용하지 않았다.

이 글은 먹보고가 수집한 신상 데이터와 공개 자료를 근거로 작성되었습니다.